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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고통은 성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함께 할 수 있는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알랭드 보통-

알랭드 보통의 책 '우리는 사랑일까'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색다른 방법으로 연애에 대해 써내려가는 알랭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등에서도 연애 심리를 열심히 그리고, 진기한(!) 예시를 들면서 펼쳐나갑니다. (단순한 표나, 그림이 인상적이죠) '우리는 사랑일까'는 사랑과 인간관계 시리즈의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라는데요.

이상 속에서만 키우던 사랑을 갖고 있던 주인공 앨리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에릭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사랑을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시켜갑니다.

“왜 그랬을까”하는 것들에 대해 쇼핑이나 종교, 건축 등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뭐 이런 생각이 들게 하죠.

연예에 대해 궁금한, 혹은 사랑하면 어떻게 되나 궁금하다면 혹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책입니다.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던 한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끝내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기 까지를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악마와 미스 프랭' 악마와 벌이는 한판 승부~


시각에 따라 같은 그림을 보고도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다음 그림에 뭐가 보이십니까?


제가 이 그림을 처음 봤던 것이 대학교 시절이었던듯한데요. 흰색을 좋아해서였는지, 전 천사가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악마가 보이는데?" 하더군요. 그래서 보니 악마와 천사가 함께 붙어있는 그림이었습니다.

항상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합니다.
맹자가 주장했던 성선설과 순자가(학교다닐때 악한걸 순한 애가 주장했다라고 해서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주장했던 성악설은 아직도 논쟁이 끝이지 않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전권 독파를 앞두고(이제 오 자히르만 읽으면.. ^^: ) 읽은 '악마와 미스 프랭'에서는 인간이 악하다고 외치는 한 이방인이 외진 마을 베스코스에 오면서 1주일동안 악마의 조건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분열과 갈등, 외면, 이해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 죽음, 그리고 부와 권력에 갑자기 직면한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과 결론지음에 대한 성찰이 나오는데요.
현명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악한 사건들은 피해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악하게 혹은 선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얼마만큼 통제하는 가에 달려있는데요.
천국과 지옥도 결국 자신의 통제에 의한 선택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일화가 있습니다.

한 사내가 말과 개를 한 마리씩 길동무 삼아 데리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느닷없이 폭풍우를 만난 그는 말과 개를 데리고 큰 나무 아래로 피신했죠.
그 순간 번개가 그 나무에 떨어지는 바람에 몽땅 타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내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길동무를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 사네와 말과 개는 뙤약볕 아래서 어떤 산허리를 힘겹게 걸어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땀에 흠뻑 젖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죠.

한 길모퉁이를 돌자, 그들 눈앞에 멋진 대리석 문이 나타났는데요.
그 문 안의 광장 한가운데서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물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죠?"
그러자 "여기는 천국입니다"라고 경비병은 대답했습니다.
사내는 "우린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입니다. 물을 마셔도 되겠습니까?"
경비병은 친절히 "선생님, 물은 들어오셔서 마음껏 드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제 말과 개도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라며 사내는 길동무들과 함께 들어가고자 했지만,
"죄송하지만, 짐승들이 들어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데요"라며
경비병은 사내만 들어올 것을 허락했습니다.
사내는 무척 목이 말랐지만 혼자만 물을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비병에게 인사를 하고 길동무들을 이끌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산비탈을 한참 걸어올라갔는데, 양쪽에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작은 쪽문이 보였습니다.
그 곳에서 어떤 사내가 모자로 얼굴을 덮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사내는 "저희 일행이 목말라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자 졸고 있던 그 사내는 그냥 "저기 바위들 보이죠? 저 바위들 틈에 샘이 있으니 가서 마음껏 마셔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내와 말과 개는 가서 실컷 갈증을 푼 후 사내에게 고맙다며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있는 남자는 "천국이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내는 의아해 하면서 "저 아래 있는 광장이 천국이라고 하던데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
그러자 누워있던 남자는 "그 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였습니다.
"이런, 그럼 아래서 천국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거군요. 그러면 천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요?"라고 사내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만에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친구들을 버리는 몹쓸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남게되니까요"

이 이야기를 읽을 때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자신만을 위해 버렸을 때의 그 이기심이 자기 스스로를 괴롭게 하기 때문이죠.
물은 마셔 목마름은 해결할지 모르지만, 결국 같이 온 앨행과 나누지 못함에 괴로워할테니까
그에게는 그 곳이 곧 지옥이 될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냐가 결국 천국에 있게도 지옥에 있게도 만드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지옥같은 현실이라면 어떤 선택에 의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오늘은 삶에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천국을 위한 선택이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되는 밤입니다...



'11분(Paulo Coelho)' 창녀로서의 삶과 그 끝... 희열을 찾아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희열(!)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행복, 기쁨, 즐거움, 좋음 등의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의미의 단어는 '사랑'입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르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지만, 그 고통보다 더 크게 느끼는 행복과 기쁨이 있기에
우린 '사랑'을 갈구하고 또 갈구합니다.

브라질의 한 시골도시에 마리아라 불리는 한 젊은 처녀가 있었습니다.

열한 살 때 이웃에 사는 남자아이를 짝사랑했지만 소년이 건넨 말을 마음과 다르게 외면해버린 후
그와 다시는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한 채 멀리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리고... 10대 시절 남자친구를 사귀지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겨버린 후
사랑이란 고통만 줄 뿐이라고 여기게 되는데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직물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리우데자네이루로 짧은 휴가여행을 떠난 그녀는
그곳에서 한 외국 남자로부터 유럽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부와 모험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떠나게 됩니다.

대충 이 부분에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의 삶이 어떻게 되어갈까...

역시,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일은 몸을 파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새로운 세계 앞에서 비틀거리는 대신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서 자신을 지켜나가면서
자신의 삶에서 깨달은 것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우연히 들른 한 카페에서
그녀는 자신에게서 ‘빛’을 보았다는 한 젊은 화가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 것은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이란 책입니다. 제목 ‘11분’은 성행위의 평균 지속시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젊은 시절 창녀라는 직업에 종사한 적이 있는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 소설이 구체화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사랑과 성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이라는 것에 성스러움이 담길 수 있는지,
그 성스러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주인공 마리아의 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속의 마리아를 찾는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의 부족할 것 없는 그들은 몸파는 여인을 만나,
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성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완벽속에서 허전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아 대화를 요구하기도 하며 삶의 물결속에서 허우적 거립니다.

마리아 역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얼마간의 몸파는 일에서 돈버는 것이 목적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어디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희열을 느끼기 위해 몸부림 칩니다.
그러다 찾게된 희열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마리아...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끝없이 어떤 희열을 추구하는 이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성적인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에 대한 한 편의 스토리로 파울로 코엘료는 사랑의 희열에 대해 접근한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그렇듯,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이든
의미를 찾고, 그 것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기 위해 자신의 희열을 느끼는 것을 갈구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적인 것이나 폭력적인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
혹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런 희열을 느끼는 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물이든, 상황이든,
그 느끼는 희열이 순간에 끝나는 어떤 희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행복이나 기쁨 등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희열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의 희열이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희열이 아니라 불길한 떨림이었을 뿐이니까요.
떨림과 희열은 분명히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삶에서의 희열...
지금 나에게 그 희열은 무엇일지 생각해봅니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그런 희열말입니다.